올해 3월초 큰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 아직도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믿기지 않긴하다. 미국에 살고 있다는 핑계아닌 핑계로 아직 고모의 부재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엄마 아빠가 3월 말에 미국으로 놀러오시기 몇주 전에 생긴일이였고 나 역시 엄마가 알려주는 소식으로만 들었던 것이였으므로, 직접 사촌 언니나 고모부께 직접 전화를 걸고, 고인의 명복을 빌기에는 용기가 없었다. 얼마 걸리지도 않을 일인데 말이다.
5개월이 훌쩍 지나서야, 고모부께 고모의 부재에 대한 위로의 글을 적어 넣은 카드와 영양제 2통을, 한국에 가시는 회사 동료분을 통해 우리 엄마 아빠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다행이 얼마전 고모부께서 아빠를 통해 잘 전달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모부께 카드를 전달드린 아빠가 내게 '고모부가 xx 언니 통해서 전화하신다고 하실거니까 잘 받아'라며, 카톡을 보내신지 몇일도 되지 않아, 사촌 언니가 카카오톡을 쓰시지 않는 고모부를 도와드려 나와 통화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통화하는 내내, 울음을 참는 노력을 했다. 온전히 통화 내용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계속 딴청을 하고, 나의 신경이 고모부의 목소리에 집중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야 갑자기 울음이 터지는 일을 막을 수 있을테니까,
사실 이 글을 쓰고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난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 그래도 고모부가 마음을 많이 추스르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지 소화는 많이 안된다고 하시는 그 말씀에 또 다시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그러시고는 내게 한국에 오게되면 같이 파주 밭에나 함께 가자고 하셨다. 밭에도 가고 짜장면도 시켜주실테니, 놀러오라고 하시는 말씀이셨다. 짜장면이든 무엇이든 내가 가면 밥한끼는 꼭 사드리겠다고 했다. 누가 사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니 말이다. 늘 고모, 고모부댁에 놀러가면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먹었던 우리 였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 꼭 건강하게 지내시고 계셔야 한다는 말과 함께,
요즘은, 점점 향수병이 짙어지는 건지, 무엇을 위해 내 소중한 가족을 멀리두고 이렇게 그리움만 가득한 편지를 쓰고, 글을 쓰고 앉아있는건지,,,하는 생각의 횟수가 빈번해진다. 그래서 다들 포기하고 돌아가는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단. 생각이 가득하던 나였는데, 무엇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이런 목적 의식이 불분명해지고 점점 희려지고 있는 나날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가족들끼리도 제대로 얼굴 못보고 살아가는게 맞나, 싶을 때가 많이 생기고 있다.
이런 일은 나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문제인 것을 알고있다.
그래도 한번 정도는 내게, 지금 너가 가고 있는 길이 맞고 그 길 끝에 너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그 날이 올거다.는 확신이 담긴 말을 해주는 그런 가이드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내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본 사람이 있을까?